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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예브나 솔로비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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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워터 계획 (1959~1971)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스틸워터 계획]] 문서 참고.}}} 1959년 4월 스틸워터 계획이 개시되고 두 달 뒤인 6월 22일, 솔로비요바는 별표 제1종 관찰 대상으로 등재되었다. 등재 범주는 '노동 쟁의를 반복적으로 서술·보도하는 문필가'였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1950년대 내내 노동 신문과 러시아어 주간지에 칼럼과 르포르타주를 써 왔으므로, 범주에 개인 이름을 쓰지 않는 상시 지정 방식 아래에서 별표에 오르는 데에는 별도의 결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그의 출판사·해외 번역자와의 서신은 우편 특별취급 대상이 되어 개봉·복사되었고, 강연과 낭독회에는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는 요원이 따라붙었다. 1961년 그가 항만 하역장의 미성년 노동 실태를 다룬 르포르타주 《항구의 아이들》을 발표하자 관찰 기록의 분량은 급격히 늘었다. 이 책은 이듬해 국회 청문회의 계기가 되었다. 1962년 그는 《항구의 아이들》로 루이나 국가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개인철에는 같은 해 수상 축하 서신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이 첨부되어 있다. 1964년 그가 오랫동안 기고해 온 러시아어 주간지의 편집인 마르타 K. 오시포바가 화재로 사망했다. 솔로비요바는 추도문에서 화재 조사가 사흘 만에 종결된 경위를 문제 삼았고, 이후 자택 전화가 상시 감청 대상에 추가되었다. 1967년에는 그를 압박 대상인 제2종으로 전환하는 안이 검토되었으나 보류되었다. 개인철에 남은 보류 사유는 "대상자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압박 수단이 노출될 경우 역효과가 우려됨"이었다. 그를 지킨 것은 그의 명성이었던 셈이다. 솔로비요바 자신은 생전에 사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1960년대 후반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내 편지는 늘 한 번 젖었다 마른 것처럼 온다"고 쓴 대목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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